마륵문중(馬勒門中)의 세거지(世居地)인 마륵리(馬勒里)는 일명(一名) 마래기라 하여 행정구역상(行政區域上) 전남 광산군 서창면 마륵리(全南 光山郡 西倉面 馬勒里)에 속해 있었으나, 지금은 광주광역시 서구 마륵동(馬勒洞)으로 편제되어 있으며, 예전에는 사방(四方)이 논으로 둘러싸이고 아늑한 초가삼간(草家三間)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典型的) 농촌마을의 풍경(風景)이었으나 요사이 급격(急激)한 도시화(都市化)로 옛날의 정취(情趣)는 찾아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우리 후손들은 영원토록 마음속에 간직하게될 소중한 고향(故鄕)인 것이다.
마륵문중의 역사(歷史)는 문조(門祖)이신 구송공(丘松公)의 증손 휘 만화(曾孫 諱 萬華)의 배부인 광산김씨(配夫人 光山金氏)께서 두 아드님을 데리고 친정(親庭)인 북촌(北村)에 들어와 입향(入鄕)하면서 300여 년을 이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문손(門孫)의 수(數)가 500여 명을 헤아리는 지역문중(地域門中)으로서의 면모(面貌)를 갖추게 되었다.
1981년도에 하남정씨 마륵문회(河南程氏 馬勒門會)가 결성(結成)된 이후 체계적(體系的)으로 문사(門事)를 수행(遂行)하므로서 선대(先代)의 훌륭한 행적(行蹟)을 본받아 조상을 극진히 받들고 예의도덕(禮義道德)을 바탕으로 제족간(諸族間)이 서로 화합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1997년도에는 함평 월야에 선산(先山)을 구득(購得)하고 문중선영(門中先塋)을 대규모(大規模)로 조성(造成)하여 각 처에 산재(散在)해 있던 조상묘(祖上墓) 30위(位)를 이장(移葬)하였으며, 합동(合同)으로 제향(祭享)을 올리면서 문손(門孫)들의 결속(結束)을 다지는 화합의 장(場)으로 활용(活用)할 수 있게 되었다.
2000년도부터는 보다 효율적(效率的)인 문사운영(門事運營)을 위해서 회칙개정(會則改定)과 교육사업(敎育事業) 등을 적극 추진(推進)토록 하였다. 또한 종문(宗門)을 빛낼 인재육성(人材育成)을 도모(圖謀)코자 문재(門材)로 장학기금(奬學基金)을 마련하여 본격적(本格的)으로 장학사업(奬學事業)을 전개(展開)하기에 이르렀으며, 2001학년도에 서울대와 고려대에 입학(入學)한 문손(門孫) 에게 장학금(奬學金)을 지급(支給)하고 장학증서(奬學證書)를 수여(授與) 한 이 후 매년 장학금 수혜가 증가 추세에 있다.→2010년도 이후 대종회장학회칙을 준용함.
이 후 2011년도에는 문중선영 서편에 300평의 묘역을 새롭게 구획하고 150기의 평장묘를 조성하여 문손에게 분양하였으며 묘역관리는 문중에서 전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