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정씨유래

하남정씨(河南程氏)의 뿌리
우리 하남정씨(河南程氏)의 연원(淵源)은 중국 삼황오제(三皇五帝) 중의 황제( 黃帝)이며 주(周)나라 대사마(大司馬) 휘 휴부(諱 休父)께서 황제의 후손(後孫)인 연유(緣由)로 습봉정국(襲封程國)하여 득성(得姓)하고, 고조(高祖)이신 휘 백부(諱 伯符)를 개종시조(開宗始祖)로 광평정씨(廣平程氏)의 기원(起源)을 이룬 후 그 45세손(世孫) 휘 원담(諱 元談)께서 동진조(東晋朝)에 신안태수(新安太守)를 역임(歷任)하시고 신안정씨(新安程氏)의 시조(始祖)가 되셨으며, 신안 시조의 31세손 휘 우(諱 羽)께서 송태종조(宋太宗朝)에 태자소사(太子少師)에 제수(除授)되어 낙양(洛陽)에 상경 후 하남으로 이주하여 관향(貫鄕)으로 삼으시니 2천년의 선계(先系)를 이어받아 하남정씨(河南程氏)의 만년대계(萬年大計)를 도모(圖謀)하였다.
하남정씨의 4세손(世孫) 태중공(太中公) 휘 향(諱 珦)의 두 아드님이신 명도(明道)와 이천(伊川) 성조(聖祖)께서 유가(儒家)의 정통(正統)을 되살려 그 도통(道通)을 잇고 동양철학(東洋哲學)의 기초(基礎)를 열어 성리학(性理學)을 태동(胎動)시키니 만고(萬古)의 종사(宗師)로 추앙(推仰)을 받으며 성균관(成均館)과 234개 향교(鄕校)의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어 향사(享祀)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정문(程門)은 고려 공민왕비인 원(元)나라의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배종(陪從)하고 귀화(歸化)하신 휘 사조(諱 思祖) 시 문헌공(諡 文獻公)으로부터 비롯되어 670여 년을 이어 내려오니 그 연원(淵源)은 실로 3천여 년의 뿌리 깊은 대 가벌(家閥)인 것이다. 동래시조(東來始祖) 문헌공의 차자(次子)이신 건천공(巾川公) 휘 광(諱 廣) 선조께서는 고려말(高麗末)의 유신(遺臣) 두문제현(杜門諸賢)으로 세 아드님과 함께 낙향(落鄕)하여 초야(草野)에 그 관록(官錄)을 묻으시니 불사이군(不仕二君)의 계자시(戒子詩)에 담긴 그 충절(忠節)의 기품(氣稟)이 실로 눈물겹다.
한국 정씨(程氏) 문중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이후 뜻 있는 선대 종친(先代 宗親)들께서 각 지역문중(地域門中)의 결속(結束)을 도모하여 이끌어 오던 중 1982년에 하남정씨 대종회(河南程氏 大宗會)가 출범(出帆)하여 체계적(體系的)인 운영(運營)으로 최근(最近)에는 국내외(國內外)의 학계(學界)를 통하여 중국(中國)의 본손(本孫)과도 교류(交流) 하면서 단절(斷絶)된 선대(先代)와의 세계(世系)를 연결(連結)하는 과업(課業)을 수행(遂行)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 후손(後孫) 들은 선조(先祖)의 위업(偉業)을 계승(繼承), 발전(發展)시키는 숭고(崇高)한 종중사업(宗中事業)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본관 통합
1985년 한국성씨총람에 의하면 정씨(程氏)의 본관은 강릉, 경주, 광주, 동래, 부이, 사탄, 앙천, 영풍, 유등, 적성, 토산, 하남, 한산 등 총 13개의 본관과 9,243명으로 집계되었다. 하남정씨대종회에서는 1955년 을미보 발간을 계기로 본관을 하남(河南)으로 통합할 것을 추진하여 왔으며 1983년 계해세보 및 1998년 무인대동보 중간(重刊)을 거치면서 하남(河南)과 한산(韓山)으로 본관이 양분되어 오던 중 마침내 2007년 4월 18일 대의원총회에서 회칙 개정을 결의함으로써 하남정씨대종회가 동래시조(東來始祖) 문헌공 휘 사조(諱 思祖)로 부터 기세(起世) 하는 한국 정씨(程氏) 일문(一門)의 통합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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